[스크랩] 열기와 냉기의 충돌,`로댕과 클로델`
열기와 냉기의 충돌,'로댕과 클로델' 파리 바렌느 가 오텔 비롱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 로댕 미술관은 고색창연한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이 인상적인 미술관이다. 입장권을 정원관람권과 정원, 미술관 동시관람권 두 가지로 나눠놓은 데서 알 수 있듯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정원으로 빨려들어가 산책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정원의 경관이 빼어나다. 앞뜰과 정원에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나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등의 작품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는데,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한가로이 조각들을 감상하다 보면 이 위대한 예술혼의 식을 줄 모르는 창조의지가 가슴 밑바닥까지 스며든다. ![]() Auguste Rodin, Young Girl with Roses on Her Hat , 1865 - 1870, Terracotta Musee Rodin, Paris 이 한기의 진원지는 바로 로댕의 작품 속에 묻혀 있는 카미유 클로델의 유작들이다. 로댕 미술관에는 로댕의 작품뿐 아니라 클로델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의 작품도 여럿 전시되고 있다. 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 [중년]L'?ge M?r de Camille Claudelle , 1,024×768 , Villeneuve-les-Avignon (France) 클로델의 '한기' 중 압권은 <중년>이라는 청동조각이다. 한 중년의 남가가 늙수레한 여인네에 이끌려 어디론지 떠나고 있고 그 뒤로 젊은 여인이 그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가지 말것을 애원하고 있다. 여인의 한과 증오가 서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 깔린 한은 이런 것이다. 로댕이 젊고 아리따운 자신(클로델)을 버리고 '늙고 사악한' 동거녀 로즈 뵈레(로댕은 침모 출신의 로즈 뵈레와 한평생 살았지만 정식 결혼신고를 한 것은 작고 직전인 1917년 초였다)를 따라 떠나버렸다. Auguste Rodin, Danaid, Bonded White Marble, Private collection 하지만 최소한 이 점만은 분명하다. 클로델의 재능이 출중해 로댕은 그의 제자들 가운데 클로델을 가장 신뢰했으며 그의 작품 가운데 섬세한 손의 표현 등 난해한 부분의 제작을 그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또 로댕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뛰어난 예술가 사이의 전형적인 경쟁관계를 의식한 클로델은 비록 나중에 정신병에 걸려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로댕이 장차 내가 더 위대하게 될까봐 날 죽이려 한다"는 의심과 두려움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살았다. 최소한 클로델은 로댕을 라이벌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Auguste Rodin, [영원한 우상]Eternal Idol , 1889, Marble, Musee Rodin, Paris, France Auguste Rodin, [키스]The Kiss, 1886,Marble, 87 x 51 x 55 cm Musee Rodin, Paris 클로델과 로댕이 갈라서기 시작한 때는 1890년 무렵이다. 로즈와 자기 사이에서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로댕이 미웠던 클로델은 드뷔시와도 교제를 했고 이것은 역으로 로댕의 질투를 자아냈다. 하지만 결국 로댕은 그의 말마따나 "동물적인 충성심을 가진" 로즈를 버릴 수 없었다. 재능과 사랑에 불타올랐던 클로델은 이로써 해석증이라는 중증 편집증의 그물 속으로 빠져들어갔고 마침내 죽음만을 그의 유일한 구원으로 삼게 되었다. 고난과 자기상실의 와중에서 그나마 제정신이 남아있을 때 클로델은 그 모든 파멸에도 불구하고 로댕을 잊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절절한 사연에 담아 편지로 띄웠다. La Pens?e Translated title: Thought, Orsay Museum, Paris, France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또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여기 계시다고 생각하고 싶어서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변해 버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저를 속이지 말아 주세요." 인상파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정원을 창밖에 두고 클로델의 작품은 오늘도 그 비원을 품은 채 여전히 로댕의 작품 곁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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